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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철학과 에세이, 시와 시해설

철학과 에세이 천재화가 미켈란 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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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위wee종합예술
댓글 0건 조회 717회 작성일 21-02-28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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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화가 미켈란 젤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에는 하와가 없다


그래서인지 아담의 창조라고 명시되어 있다.


흙으로 아담을 빚으시고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신 엄청난 에너지가


아담의 코로 전달될 때,


그때의 그 묘사를 미켈란젤로는 다른 방법으로 묘사한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의 장소의 원형은 하나님의 장소에서 현실적인 장소로 분화되고 있다.



이 장소는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따로(1870~1945)가 평생의 사유 끝에 도달한 무()와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이 숨을 불어넣기 직전의 아담의 상태이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의 창조방법론을 양자역학을 적용,


에너지를 가진 양자의 움직임의 터널링을 이용한다.


미켈란젤로가 터널링 효과를 천지창조의 그림에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치 하나님의 창조에서 방정식적 입체이성질체(stereoisomer)로 생명의 이식을 가능케 한 것으로 본 인간 사고적 방법이다.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에서 미켈란젤로의 창의성을 차용했고


김홍도의 그림에서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에서도 터널링 효과를 표출하고 있다.


이것이 곧 해석학적 예술의 감성과 인문적 소양을 키우는 올바른 미술적 감성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형이하학으로 보는 미술의 바탕이 오히려 철학적 감성으로 승화하는 밑거름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의 정의는 과학으로부터 시작된다.


현실로 보이는 것은 곧 과학이기 때문이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직접적 묘사는 신성 모독을 창출하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신이 인간과의 키스 장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등을 보이신 것 그 이상을 보이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스티나 소 성당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는 작업대에 서서 고개를 뒤로 젖힌 불편한 자세로 4년 만에 완성했다.


혼자서 천장화 전체를 완성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프레스코화의 밑바탕이 될 회반죽을 천장에 바르거나 그림에 사용할 물감을 배합하는 일을 돕기 위해 소수의 조수들이 고용되었다.


원래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였으나,


그의 재능을 시기한 도나토 브라만테가 교황 율리오 2세에게 그를 곤란하게 하려고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림을 그릴 것을 요구하도록 했고 미켈란젤로는 이를 받아들였다.


물론 이 작업은 엄청난 중노동이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목과 눈에 심한 이상이 생겼다.


게다가 변덕스러운 교황과의 다툼도 있어서 미켈란젤로는 이 작업을 매우 괴로워했다.


그가 이 고된 작업을 엄청나게 괴로워해서 쓴 소네트가 남아 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완성한 그림을 보고 다들 경악하며 찬양하고 감탄했으며,


시기했다는 경쟁자인 건축가 브라만테도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한다.


실물은 성당 천장에 그려져 있어 바닥에서 고개를 꺾고 봐야 하고


관광객들과의 거리가 엄청나기 때문에 딱 신용카드 크기 정도로 작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장함이 느껴진다.


그림 한 장 한 장은 작아 보이겠지만


그것들이 성당을 꽉꽉 채운 전체 크기는 매우 크기 때문에


한눈에 딱 안 들어오더라도 일단 들어가는 순간 그 자체로 압도당한다.


보존도 잘되어 있어서 세세한 부분도 잘 보인다.


천지창조가 그려진 방에 들어가면 당최 나올 생각을 않는 사람들 때문에


일정 시간마다 관광객들을 내보내고 뒷사람들을 받는다.


이 작품은 예배당 입구에서 출발하여 구약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간 지점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인간과 신이 함께 표현되는 양식을 과감히 창조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하나님의 창조적 힘과 인간이 만들어지는 감동적인 순간을 뛰어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천지창조의 여러 장면 가운데서도 하느님과 아담의 손가락이 닿을락 말락 한 장면이 워낙에 유명한지라


여기저기에서 패러디 당하는 명화들 중 하나다.


그런데 아담의 손가락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원본이 아니라 카르네발리가 다시 그린 것이다.


천장화가 완성된 후 경당의 불안정한 기반 때문에 벽면에 균열이 발생했을 때 아담의 손가락이 파손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저 손가락 접촉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만든 다음


코로 숨을 불어넣어 생명체로 만들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전까지 이 부분을 묘사한 다른 작품들에서는 말 그대로


하느님이 아담의 코 부분에 입술을 대고 숨을 불어넣은 모습이었는데


마치 남자끼리 키스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간접적으로 바꾼 것이다.


미국 세인트존스 메디컬센터의 메시버거 박사는 이 아담의 창조에서 뇌의 단면도가 보인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에 대해 메시버거는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성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교수들은 다른 그림에서도 뇌의 해부도가 보인다는 주장을 했으며


"교회 몰래 그림에 자신의 해부학적 성과를 기록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1475~1564)는 외로운 천재의 대명사다.


스물세 살 위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예술 외 여러 분야를 아우르지도,


여덟 살 연하의 라파엘로처럼 젊은 나이에 추기경 추대설까지 나올 정도로 정치력이 좋지도 못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 만큼 외골수였고


'외모 때문에 더욱 생명력 넘치는 인체 표현에 집착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볼품도 없고 왜소했다.


재능으로 일어섰지만 그 재능 때문에 시대와 불화했고 그리고 


그 재능으로 수백 년 뒤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 역시 자기의 천재를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로 받아들인 듯하다.


자신에 대한 평가도 무섭도록 냉소적이었다.


현대의 미술사가들은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1534~41)에서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고 할 만한 것을 발견한다.


격노한 신 바로 아래 구름에 걸터앉아 있는 사도 바돌로매의 손에 들려 있는 살가죽이 그것이다.


바돌로매는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아 순교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바돌로매가 든 '껍질'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다.


'최후의 심판'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한 391명의 군상이 그려져 있다.


신과 천사 혹은 신에게 간청하거나,


지옥에 떨어졌거나, 승천했거나,


죽어서 부활한 인간들을 한 장면에 다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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