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성소예수 > 출판

출판

성소예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위wee종합예술
댓글 0건 조회 136회 작성일 21-03-21 06:09

본문


성소예수



오르가즘
강위덕

인간의 기능 중 오르가즘만큼 감정의 절정을 이루는 감각 기관은 없다. 
육중한 무개의 남성이 채구가 적은 여성과 성행위를 하다가 늑골 세 개가 부러졌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바위가 계란 위에 체중을 실은 격이지만 여성이 오르가즘에 오를 때는 바위가 솜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억장이 무너지고 
뼈마디가 으스러지고 
근육의 조직이 해체되는 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남녀는 오르가즘에 돌입된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면 강물이 이름을 잃듯 
남녀가 오르가즘에 이르면 개성적인 시냇물은 폭포를 타고 바다에 이른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내가, 
나라고 믿고 있던 나도 보이지 않고, 
아예 보고 싶지 않은 내가 되어 바다 속에서 나를 나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강물과 강물이 만나 바다가 된다. 
바다의 생물은 목적이 있으나 목적을 상실한 체 
본능적으로 자궁 속의 안식처를 얻기 위해 무수한 경쟁 속으로 들어간다.
수억의 정자 중 승자는 단 하나, 
승자가 된 정자와 그를 기다리던 난자는 어둠 속에서 랑데부한다.
우주와 같은 한 톨의 정자와 난자는 
우주와 우주의 만남으로 또 다른 우주가 되어 
어둠 속에서 생명을 창조해 나간다. 
이 어두움이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현상이고 
칸트 식으로 말하면 감각계이고 
서양정신사에서는 이항 대립으로 설명된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역사는 분리의 작업이다. 
10개월간 어둠 속에서 섬광의 사랑을 느끼며 자란 단일 세포는 
이제 성숙된 한 인간이 되어 나를 나로 생각하며 
자궁 속의 어두움에서 바깥세상의 어두움으로 분리된다. 
전자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후자는 끈질기게 사람을 따라 붙는 그림자이다. 
사람들은 그림자를 기대고 산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여전히 어두움이 있어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다.


해설
성소예수라는 책 속의 문학적 철학은 이 시속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성소의 구도는 사람의 신체 구조를 닮았기 때문에 
여성을 상징한 번제단과 
남자를 상징한 어린양이 
번제단 위에서 지글지글 불에 타들어가는 장면은 
마치 오르가슴과도 비교됩니다. 
성경에 직접 기록되지만 않았지만 
자연의 삼라만상 속에는 
창조주의 사랑이 구석구석에 설명되여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재창조의 조명으로는 
구속의 경륜이 구석구석 숨겨져 있습니다.
감성적으로 성서의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하더라도 
철학적 개념으로 성경을 풀이 해석하는 사람이라면
성소예수와 오르가즘의 철학적 관계를 금방 이해 할 수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질문이 있으신 분께서는 답글에 내용을 올려주세요.
반듯이 답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